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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전남 고흥군][가족 추천 코스] 고흥의 문화유적 코스 1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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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의 문화유적 코스 1

지협을 통해 육지와 연결된 북부를 제외한 군 전체가 남해에 둘러싸여 있는 고흥 반도의 형상을 두고서‘누워있는 소’ ‘잘록한 호리병 모양’ ‘다도해에 드리운 복주머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고흥의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26.55km
- 코스 총 소요시간 : 7시간


 




고흥 존심당 및 아문

- 홈페이지 : http://tour.goheung.go.kr
보성군 벌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외줄기 국도를 따라가면 고흥반도로 들어서게 된다.고흥군은 고흥반도와 주변의 섬(유인도 19개,무인도 152개)로 이루어진 고장이다. 존심당은 고흥군청 안에 그 정문인 아문과 함께 남아 있는데, 본 건물은 조선시대 흥양현의 동헌이다. 동헌이란 조선시대 각 행정단위마다 중앙에서 수령이 파견되어 정무를 보던 아사를 말한다. 건물의 연혁에 대하여는 호남읍지8책(1871년)신증흥양지 관아조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현 위치에서의 건립은 현감 김시걸 재임시인 1739년(영조 15년)에 건축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아문은 옛 흥양 동헌의 출입정문이다. 건륭(乾隆) 30년이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편이 발견되어 영조 41년(1765)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존심당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이며 아문은 솟을삼문식으로 어간(御間)의 지붕이 양측 지붕보다 높으며, 3칸 모두에 두짝의 판장문을 달았다.





쌍충사

- 홈페이지 : http://tour.goheung.go.kr
http://www.cha.go.kr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忠烈公 李大源)과 충장공 정운(忠壯公 鄭運)을 배향한 사우이다. 이대원(1566~1587)은 자는 호연(浩然)이고 함평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남보다 뛰어나 18세때에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21세의 젊은 나이로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 녹도만호에 부임하였다. 이대원 장군은 비록 젊은 나이였으나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자 즉시 출동하여 왜적과 싸워 적장을 포로로 잡아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에게 보고하였다.그러나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장군이 역전하는 것만 보고있던 심암은 평소 이대원 장군과 정분이 있던 여인에 대한 흑심이 있었던 차에 그 공로마저 탐이 난지라 그를 불러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릴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장군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심암은 며칠 후 전세를 다시 확장하여 쳐들어오는 수많은 왜적과 남은 군사로 싸울 것을 명령하였는데, 그를 죽을 땅으로 들여 보낸 셈이었다. 출정하기 전 이대원장군은 구원병을 보내줄 것을 약속받고 기다렸으나,구원병이 끝내 오지 않으니 수많은 적선에 둘러싸여 피어린 싸움을 하다 마침내 적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항복을 종용하는 적 앞에서 굽힘없이 호령하던 장군은 적선의 돛대에 묶여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이에 앞서 관찰사의 장계로 심암과의 일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심암 대신에 이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이장군이 순국한 다음의 일이었다. 후에 이억울함을 문중과 이장군의 여인이 상소를 올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운(1543~1592)은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태생으로 본관은 하동, 자는 창진(昌振)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정충보국(貞忠報國)」의 사자(四字)가 새겨진 가전보검을 들고 국가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였다 하며,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거산찰방, 웅천현감, 제주판관(居山察訪, 熊川縣監, 濟州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강직한 천성탓으로 재임 중에 상관들과의 알력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순탄한 성장을 하지못하였으며, 49세 되던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에 임명되었다.녹도만호진은 왜적이 침입하는 길목일 뿐 아니라, 임명된 해가 바로 임진왜란 바로 한해 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공의 순절보국은 천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은 만호로 부임한 즉시 군기와 병선을 예의 점검하고 응변의 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당시 상관이었던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아낌과 칭찬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해전(玉浦海戰•唐布海戰•閑山海戰) 등에 참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부산포해전에서 쫓겨가는 적을 추격하다가 몰운대(沒雲台)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 사당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불탄 뒤 숙종 7년(1681) 사우 중건을 추진하였고, 이듬해인 숙종 8년(1682) 임조•서봉영 등 호남유림 연명의 청액소(집의 신명주찬)를 올려 숙종 9년(1683) 쌍충사로 사액되었다. 영조 11년(1735) 보수하였고 고종 5년(1868) 전국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2년 고흥향교 선비들의 협력으로 강당을 짓고 1924년 신실까지 지었으나 1942년 일인(日人)들에 의해 다시 폐허화되었다. 1947년 녹도 쌍충사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1957년 신실과 강당을 개축하였다.쌍충사는 봉암리 해안가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전면으로는 녹동 항구와 소록도가 보이는 지형으로 전면의 자연 경관이 매우 훌륭하다. 이 언덕 위에는 쌍충사만이 있으며 1947년에 중건된 사당과 1957년에 건립된 강당 사각대문,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당의 좌향은 임좌병향이며 건물의 배치는 맨 윗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집 사당(신실)을 배치하였다. 이곳과 2.5m의 지반차를 두고 형성된 아래단의 좌측으로 동향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겹처마로 꾸민 팔작지붕의 강당을 배치하였다. 대지 우측 밑으로는 강당과 마주보게 관리사를 배치하였다.

* 규모 - 사당, 강당 등 4동
* 시대 - 숙종 8년(1682), 1947년 후건





점심식사(녹동회타운)

- 전화번호 : 061-842-5199
녹동항은 여러 섬을 오가는 섬사람들이나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꼭 관광철이 아니더라도 각종 수산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수협 위판장에 꼭 필요한 곳이 있다면 싱싱한 횟감을 떠서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녹동회타운은 위판장 2층에 자리 잡은 식당. 손님들이 1층 중매인들에게 떠온 회와 함께 지리탕과 매운탕까지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한 사람당 초장값을 받는다.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어 전망이 좋고 소록도가 가까운것 또한 장점이다. 매년 1월 1일은 해맞이 손님이 많아 1년 중 가장 바쁜 날. 제주도와 거문도로 가는 배에서 선상 해돋이를 보고, 녹동으로 와서 회를 먹고 가는 손님들이다. 그리고 꽃피는 봄, 4월과 5월에 손님이 가장 많다.

위치도 좋은 편. 배를 타면 5분 거리에 금산이 있고, 차로 5분이면 소록도에 닿을 수 있다. 바다와 섬의 낭만을 즐기면서 싸고 맛좋은 회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는 제격이다.




소록도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임시휴관 (2020.08.22 ~ 상황 안정시까지)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행정보 변동사항 확인하기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섬의 면적은 4.42㎢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면 600m 전방에 작은 사슴처럼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2009년도 개통된 소록대교는 국도 27호선을 이용하여 소록도까지 이동 가능하며 이로 인해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소록도 주민들이 섬 밖으로 왕래하기가 편리해졌다.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이곳의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19,834.8m²(6천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지금도 공원안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공원 곳곳에는 환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기념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공원 입구에는 일제 때의 원장이 이곳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검시실이 있다. 이 검시실 앞에는 25세 젊은 나이에 강제로 정관수술을 받은 환자의 애절한 시가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또한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된 생활자료관이 있다. 녹동항에서 운항되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활개바위, 거북바위 등 갖가지 기묘한 바위들과 함께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에 있는 나로도 해수욕장은 완만한 해안선과 얕은 수심으로 가족휴양객들의 피서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녹동에서 승용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팔영산자연휴양림을 찾으면 산과 계곡, 일출의 장관을 즐길 수 있고, 숙박시설로 휴양림내 산막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이 밖에도 공원내에는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 일본인이면서 조선 환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그리고 “한센병은 낫는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구라탑 등 환자들의 애환과 박애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념물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섬내에는 울창한 송림과 백사장이 잘 어우러져 있는 소록도해수욕장이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16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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