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합천)
- 홈페이지 : 해인사 http://www.haein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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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최치원의 가야산 해인사선안주원벽기에 의하면 해인사는 순응, 이정 스님에 의하여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되었는데, 그때 왕의 조대비 성목태후가 대시주였다고 한다.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장이다. 해인사를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라 부르는 것은 해인사 대장경판전에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는 대장경판전, 대적광전, 명부전, 독성각, 응진전, 응향각, 퇴설당, 해행당, 심검당, 궁현당, 경학원, 적묵당, 관음전, 구광루, 보경당, 대장경보전연구소, 명월당. 사운당, 청화당, 범종각, 우화당, 해탈문, 천왕문, 일주문 등 많은 전당이 있다. 부속암자로서는 원당암을 비롯하여 홍제암, 용탑선원, 백련암, 지족암, 희랑대, 삼선암, 금선암, 약수암, 국일암, 보현암, 금강굴, 길상암, 고운암, 간월암, 청량사 등이 있다. * 템플스테이 * 템플스테이는 자연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마음의 휴식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일이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전통사찰의 예절과 수행법을 통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개인이나 단체 등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참된 '나'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마음의 평온과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재 * 고려팔만대장경판 (국보), 대장경판전 (국보),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월광사지삼층석탑(보물),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마애불입상(보물), 청량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청량사삼층석탑(보물), 지방문화재 길상탑 등이 있다. 중요민속자료인 광해군내외 및 상궁 옷들과 100여 종의 국보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대적광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화엄종 사찰의 중심 법당이다.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자체를 상징하는 불상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 이외에도 화엄전과 비로전이 있다. 이곳은 대적광전은 802년(애장왕 3)에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비로전이었으나, 1488년(성종 19)에 왕실의 지원에 의해 학조대사가 중창하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1817년(순조17)에 불타버려 이듬해 중건한 것을 1971년에 지관스님이 다시 중수한 것이다. 큰 절의 중심 불전에 걸맞게 정면5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을 한 우람한 모습이다. 정선이 그린 해인사 그림에는 대적광전이 2층으로 그려졌는데,1817년의 화재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큰 건물이었을것이다. 지금 이 모습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계 팔작집으로서 중수과정에서 많이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에는 용기사에서 옮겨온 중앙의 큰 비로자나불을 비롯해 법단의 좌에서 우측으로 법기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비로자나불(대), 비로자나불(소),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순으로 일곱분의 불보살님이 봉안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과 지장보살이 함께 모셔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주변지역의 불타버린 법당에 있던 지장보살을 옮겨 놓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석등은 부처님이 계신 사찰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처님에 대한 등 공양과 관계된 것이므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함께 법당 앞에 설치된다. 이 석등 역시 원래 석탑 앞에 있었지만 현재 위치로 옮겨놓았다. 옮겨진 이유와 시기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석등은 받침돌과 기둥돌, 등불을 놓는 화사석,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돌이 원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맨아래 네모난 받침대에는 코끼리 눈 모양의 무늬를 새겨 넣었으며, 8각형의 아래 위 받침대에는 8장의 연꽃잎을 각각 따고 하늘을 향하도록 새겨넣었다.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을 두었는데, 창 사이의 모서리 4면에 각각 사천왕상을 돋을새김한것이 이채롭다.지붕돌은 역시 8각으로 처리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으며 맨 위에는 둥근 구슬을 올렸다. 새겨진 눈 모양과 연꽃무늬의 우아한 조각수법, 그리고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398년 조선 태조 7년에 강화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팔만대장경판전은 1995년 12월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공식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적광전,구광루 등 문화재 및 암자들이 즐비하여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해인사 3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이 탑은 2중 기단과 3층의 탑신 및 지붕돌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다. 원래 이 탑의 받침은 신라 석탑 양식인 2중이었으나, 1926년에 탑을 수리하면서 받침을 확장하고 한 층을 더 올려, 본래 지니고 있던 조화미를 상당 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4면의 각 모서리에 기중을 새긴 것 외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다. 지붕돌받침은 신라 석탑의 전형인 5층으로 되어 있고, 지붕돌 추녀 끝은 살짝 들어올려져 완만하게 처리되었다.지붕돌의 각 모서리에는 작은 종이 달려있는데, 본래의 것은 없어지고 나중에 다시 매단 것이다. 탑의 꼭대기 역시 일부가 소실되어 꼭대기를 떠받치는 받침대와 위로 핀 연꽃, 바퀴만 남아있다. 1926년 6월에 이 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상층 받침의 돌 함 속에서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석탑을 수리하고 나서 이들 불상을 다시 탑 안에 봉안하였다. 또 이 석탑 앞에는 코끼리의 눈모양을 형상화했다는 안상과 연꽃무늬가 조각된 배례석이 있었으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석등 앞으로 옮겨졌다. [조선불교통사] 에는 태조가 즉위하여 이 탑을 수리할 때, 대장경을 탑 안에 봉안하면서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평안을 빌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26년에 탑을 수리할때 대장경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조가 수리한 탑이 이 탑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욱이 근래의 사찰 보수 때 경학원 근처에서 신라 석탑의 재료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또 다른 석탑이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다.
[가야산]
가야산은 법보종찰 해인사의 주산이며 해발 1,430로서 소백산맥의 한 지맥으로 팔경중 하나이다.
영산일 뿐만아니라 조선조 세조대왕은 가야산은 천하명산이며, 생불주처라 하였고, 초대 주한 프랑스대사를 역임한 로제샹바르씨는 해인사 야산의 승경과 고려팔만대장경판에 감복되어 마지막 유언에 나의 유해를 분말하여 해인사에 뿌려달라 하였으므로 1982년에 임종하고 해인사 천불동에 뿌려졌다. 무릉교에서 시작하여 홍류동 계곡은 홍송이 울창한 장장 10리여의 수석과 송림으로 이어져 다른 어떤 사찰과 명산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합천 학사대 전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이 전나무는 높이 약30m, 둘레 5.1m 쯤 되는 수령이 1,000년 이상 된 고목이다. 나무의 줄기가 지상 10m 높이에서 두 개로 벌어져 있으며, 나뭇가지가 아래로 향해 뻗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에 은거할 때 찾았던 곳이다. 학사대라는 이름은 고운 선생이 헌강왕때 29세의 나이로 한림학사 벼슬을 하였는데 그 벼슬이름을 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말년에 제자들 앞에서 이 곳에 지팡이를 꽂으며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지팡이도 또한, 살아 있을 것이니 학문에 열중하라" 는 유언을 남기고 지금의 홍제암 뒤 진대밭골로 유유히 홀로 들어가신 전설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전나무를 일러 고운 선생의 "지팡이 나무"라고 불리운다.
[고사목의 유래]
이 나무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보답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 느티나무는 1,200여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국보 (1963년 12월 20일 지정)해인사 장경판전은 건물 자체가 특수할 뿐 아니라 고려대장경의 판전으로서 유명하며, 똑같은 규모 양식을 가진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어 남쪽을 수다라전, 북쪽을 법보전이라 한다. 건물은 간단한 방식으로 가구하였고 세부 역시 간결하여 판전에 요구되는 기능을 충족시킬 목적 이외에는 아무런 장식적 의장을 가하지 않았다.여러 가지 모양의 자연석 주춧돌 위에 배흘림이 큰 기둥을 세웠고, 기둥 위에는 기둥 머리에 해당되는 주두를 올려놓았다. 이 주두 위에는 대들보를 얹어 그것이 직접 주심도리를 받으며, 그 밑에는 간단한 익공이 있을 뿐이다. 마루보는 대들보 위에 놓인 동자주 위에 놓고 중앙에 같은 양식의 동자주를 놓아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이 동자주들은 모두 아랬 부분에 간단한 화반으로 고정시켰다. 몸통 부분은 짧은 모기둥이고, 머리부분에는 포작을 꾸몄다. 이 포작의 첨차는 보 밑을 받치는 쪽이 초공모양으로 되고, 도리 밑 장혀를 받치고 있는 것은 다포 양식의 첨차 및 소누와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 측면 2칸 규모의 수다라전, 법보전과 정면 2칸, 측면 1칸의 사간전인 동,서고 등 4동이 장방형의 구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다라전과 법보전은 우진각 지붕이 고 동,서 사간전은 맞배지붕인데 그 가구는 창고 건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통풍을 배려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이 서로 다르게 하였으며 매칸마다 광창을 설치하고 장식적인 요소는 모두 없애 버렸다. 집의 가구 형식은 오양가이며, 대들보는 고주에서 합량되고 대공은 동자주 모양이나 복화반과 초공을 받쳤고 대공에는 솟을 합장을 끼웠다. 판전 내부는 흙바닥이며, 판가가 설치되어 있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다. 1964년 해체 수리를 하면서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광해군 어의가 발견되어 보존하고 있다.
* 문화재의 보고, 해인사에 대하여 *
해인사는 통도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 사찰의 하나이며 당에서 수도한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신라말 애장왕 3년(802)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내에는 대소의 많은 법당이 있으나 그 대부분은 근세에 세워진 것이고 장경판전만이 조선 초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건물에 사용되었던 와당 또는 평와에 나타난 홍치 원년(1488)이라는 각명 등으로 추정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무사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낡았던 것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전을 중수하고 1624년에는 법보전도 중수하였다.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4천 법문을 수록하였다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이므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장경판이다. 또한 이 대장경은 대장경 간행 역사에 있어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1614년에 이 대장경을 바탕으로 하여 대장경 종존판을 새기다가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있고 그후 신연활자로 대일본교정숙쇄판대장경:1880~1885, 대일본속장경(1902~1912), 대정신수대장경(1924~1934)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교대장경:1979과 현재 간행하고 있는 불광대장경:1983~현재의 바탕을 삼고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간행기록을 조사해 보면 고려 고종 24년(1237)부터 35년 (1248년)까지 12년 동안 새겼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 16년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준비 기간을 합산한 것이며,고려대장경판각 사업은 초조 대장경이 불타버린 이듬해인 고종20년(1233)경에는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새긴 대장경판은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의 특징은 무엇보다 이 사업을 주관했던 당시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 잡은 데에 있다. 이때 수정한 내용은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에 수록되어 있다.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보관되고 있다.대장경판의 수는 일제 때 조사한 81,258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대장경판이 아닌 조선조 때 판각된 것도 포함된 통계이다.이러한 것은 경판의 간기와 경판에 새겨져 있는 각수를 조사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대장경판의 권말에는 을묘해 고려 국가대장감봉칙조조등으로 간기가 기록되어 있고 각 경판의 권두제나 권미제 아래의 광곽 밖에 각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수천만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정밀한 서각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해인사의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탑, 해인사 길상탑]
길상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 석탑양식을 갖춘 탑으로 2층의 기단을 지니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상층 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낮고 넓어서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받침은 각각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는 노반(露盤)이상이 결실되었으나 노반에 지름 5.2㎝ 정도의 찰주(刹柱)를 꽂았던 원형 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중 소탑이 157개가 있으나 완전한 수량이 아니다. 이는 이 탑의 건립이 탑지(塔誌)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조탑경(造塔經)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거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소탑은 원래 99개, 77개가 안치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망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매의 탑지는 23㎝의 정방형으로 두께 2.4㎝의 검은 전판(塼板)으로 만들어졌는데 명문은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찬(撰)한 것으로서 유명하다.
즉 건령(乾寧) 2년(신라 진성여왕 8년, 서기 895)을 전후한 7년에 걸친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창궐한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기 위해 힘쓰다 희생된 승속(僧俗)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높이, 공장승(工匠僧), 탑 안에 납입한 법보(法寶)의 내용 및 탑을 건립하는데 소용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一丈三尺)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唐尺)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 등은 당시의 사원 경제연구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 말기 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가야면)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해인사(합천) 055-934-3000
매표소 055-934-3140
- 주차시설 : 있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팔만대장경 관람시간]
하절기 08:30∼18:00 / 동절기 08:30∼17:00
- 관 람 료 : 개인 - 성인 3,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700원
단체 - 성인 2,5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 단체 30인 이상
※ 해인사 매표소 055-934-3140
- 주차요금 : 경차 2,000원 / 승용차 4,000원 / 미니버스 4,500원 / 대형차 6,000원
- 화장실 : 있음
- 한국어 안내서비스 : 문화해설사 안내(사전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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