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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지역별 관광지 정보

광주 광산구 관광지 목록 - 송산유원지, 쌍암공원, 송정공원, 신창동 선사유적지, 월계동 장고분, 용아생가, 무양서원, 풍영정, 호가정, 양송천묘역, 용진정사, 송호영당, 양씨삼강문, 삼거동 ..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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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유원지

- 홈페이지 : https://www.gwangsan.go.kr/culture
오랜 세월 동안 원시적인 상태로 남아 있던 황룡강(黃龍江)의 섬을 송산유원지으로 조성하였다. 송정리 영광통에서 영광방면으로 약 5km 남짓을 가다보면 황룡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우회전을 하여 박호동 가는 길로 들어서서 2000여 미터를 더 가면 커다란 강 한 가운데 떠있는 섬 공원을 볼 수 있다. 이 섬은 전체가 공원이다. 섬의 면적은 3만 9,277㎡이다. 강은 어등산이 감싸고 섬은 황룡강이 감싸안아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1만 2천여평의 잔디광장, 그 광장을 둘러산 산책로,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60여개의 단지와 가로등, 씨름장, 아득히 보이는 섬의 북쪽 끝에 있는 6개의 돌탑들이 있다.

청등보 바로아래 강 한가운데 만들어진 2개의 물놀이장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수영을 해도 넉넉할 크기다. 보의 한가운데서 섬으로 들어가면 입구의 왼쪽엔 커다란 연못이 오른쪽엔 100여그루의 자연목이 우거진 그늘아래 약 1천여 평에 달하는 캠프장이 있다. 섬을 빙둘러 만들어진 700여m의 산책로를 걸으면 왼쪽엔 조성된 갖가지 야생화들이 줄을 잇고, 오른쪽으로는 검푸른 수초들이 물과 함께 떠 있어 마치 공원과 시골 강가를 동시에 걷고 있는 느낌을 준다. 수 억 년을 세월과 함께 흐르며 강은 상류의 모래와 흙을 한줌한줌 날라다 쌓고 또 쌓아 섬을 만들어 놓았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원시적으로 남아있던 이 섬은 이제 자연과 어우러져 수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공원이 되어 우리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등임로 43-1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711
- 개장일 : 2000년
- 주차시설 : 있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24시간


- 입 장 료 : 없음
- 이용가능시설 : 생태연못, 야생초화원, 연꽃체험단지, 운동체육시설, 어린이 물놀이장 등
- 화장실 : 있음
- 한국어 안내서비스 : 불가
- 외국어 안내서비스 : 불가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쌍암공원

- 홈페이지 : http://culture.gwangsan.go.kr
* 호수와 여유, 그리고 쉼이 있는 공간, 쌍암공원 *

쌍암공원은 광산구 첨단지구 내 광주과학기술원 앞에 위치해 있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호수 때문에 운치를 더하고 있어, 일명 호수공원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호수주변을 따라 잘 조성된 철쭉꽃 숲들과 소나무숲이 있고 하늘을 향해 내뿜는 부유폭기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더해준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도심 속의 작은 예술축제 등 이벤트행사가 열려 분위기를 한껏 돋군다. 호수 속에서는 시커먼 물고기 떼가 오는 이를 반기고 듬성듬성 조화를 이룬 물풀들은 자연미를 한껏 더해준다. 유럽의 여느 공원의 가로등 같이 우아하고 고전미 넘치는 96개의 가로등은 밤의 광원을 환상으로 물들인다.

* 가족공원으로 자리 잡은 쌍암공원 *

146개의 벤치, 깨끗하고 정갈한 화장실3개소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쌍암공원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조합놀이대 3개소 등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 단위의 공원으로 좋다. 또한 축구장과 농구장, 족구나 피구를 즐길 수 있는 드넓은 잔디광장, 체력단련시설 등이 갖추어져 청소년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도 4명의 관리요원이 상주하여 시민불편을 없애주고 있다. 광산구에서는 주민들의 편의와 쾌적한 공간조성을 위해 왕벗나무 240본을 식재하였으며, 팔각정, 화장실 각1개소와 파고다지붕 18개소를 설치했다. 또한 편리한 음용수 공급을 위해 음수전 3개소를 설치 할 예정이어서 앞으로는 더욱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첨단중앙로182번길 39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704
- 주차시설 : 있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 이용가능시설 : 벤치, 조합놀이대, 팔각정, 축구장, 농구장, 잔디광장, 체력단련시설, 음수대 등

- 화장실 : 있음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송정공원

- 홈페이지 : https://www.gwangsan.go.kr/culture
송정 주민과 광산 구민의 휴식 공간인 송정공원은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현충탑과 용아 박용철 시인의 시비, 국창 임방울 선생의 기념비, 의병대장 금제 이기손 장군의 의적비, 이밖에도 많은 충혼비가 설치되어있다. 또한 지역 주민의 지식의 산실이 되고 있는 송정 도서관이 있으며, 노인당도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공원로 8-23 (소촌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40-8514, 062-960-8711
- 주차시설 :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24시간


- 입 장 료 : 무료
- 이용가능시설 : 송정도서관, 노인회관, 금산사, 놀이터, 체육시설, 게이트볼장, 지압보도 등
- 화장실 : 있음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신창동 선사유적지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 철기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주요 유물 *

신창동 선사유적지는 영산강 유역의 충적대지와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의 북쪽 1.5km에 월계동 장고분(기념물)이 있다. 이곳에는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1세기)의 늪과 못 터, 토기 가마터, 배수 시설, 집자리, 독무덤 등 고대 농경 생활과 관련된 유적이 집중된 곳이다. 독무덤은 토착 농경민의 어린이 무덤으로 유적의 서쪽 구릉 경사 면에 53기가 분포하고 있다. 독의 기본 형태는 평저난형(平底卵形)으로, 축약된 구연 등은 무문토기의 가장 보편적 형식이다. 출토 유물은 무문토기와 평저장경호(平底長經壺) 등의 토기류, 청동제 칼자루장식, 돌도끼, 돌화살촉, 땅파는 도구로 추정되는 철제편 등이 있다. 늪과 못터는 영산강의 범람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모두 10개 층으로 나누어지거나 크게 3개 단위로 구성된다. 출토 유물은 빗 괭이, 나무뚜껑, 굽다리 접시, 검은 간토기 등 목재류(木材類), 토기류(土器類), 칠기류(漆器類), 석기류(石器類)와 탄화미 (炭化米), 탄화맥 (炭化麥), 볍씨, 살구씨, 호도씨, 오이씨 등의 씨앗류, 민물 조개류, 물고기뼈, 짐승뼈 등이 있다.

* 철기시대의 토기 연구에 의의가 있는 토기 가마 *

토기 가마는 지반(地盤)인 황갈색 석비례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가마바닥은 U자형으로 5∼8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출토 유물은점토대(粘土帶)토기, 검은간 토기, 대접, 두형(豆形)토기, 굽다리 접시, 시루, 옹형(擁形)토기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鐵刀子) 1점 등이 있다. 구상유구(溝狀遺構)는 토기 가마 북쪽에 있는 두줄이 평행한 도랑과 같은 유구이다. 석비례 암반층을 파고 상.하 2단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구 안쪽은 V 또는 U자형이다. 출토 유물은 점토대토기, 옹형 토기, 컵형 토기, 토기 뚜껑, 가락 바퀴 등이 있다. 조상유구(條狀遺構)는 모두 5조로 너비 10∼25cm의 길다란 모래띠가 40∼70cm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쪽으로 연결되고 있다. 장축 방향은 남북이며 교란되어 유구의 형태가 분명하지 않다. 무문토기 3점이 출토되었다.

* 농경 생활의 발견과 전파 경로 연구에 중요한 자료 *

집자리는 장방형 움집으로 석비례 암반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일부 유실 되었다. 바닥의 중앙부는 진흙을 불에 구워 다졌으며 타원형의 화덕을 설치하였다. 장축 방향은 남북이며 길이 430cm, 너비320cm, 깊이20cm 이다. 유물은 화덕자리 근처에서 연질원저단경호(軟質圓低短涇壺)와 포탄형의 타날문(打捺文)토기가 북쪽 벽가에서 적갈색 연질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유적 유물은 당시의 생산과 유통, 매장 유적의 일부를 엿볼 수 있어, 이 시기 생활양식과 농경 생활의 발전, 전파 경로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규모 - 250.086㎡
* 시대 - 초기 철기시대
* 소유자 - 국유 외 사유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신창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24시간


- 입 장 료 : 무료
- 외국어 안내서비스 : 불가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월계동 장고분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월계동 장고분은 영산강 상류의 낮은 구릉지대에 있는 장구촌마을에 있으며, 발달된 방부(方部)와 방패형 주호(周濠), 나팔형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달된 방부(方部)와 방패현 주호(周濠), 크게 벌어진 나팔형 토기 등이 특징으로 옛 무덤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기원과 관련하여 고대 한일관계사를 밝히는데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광주 첨단산업기지 조성 계획에 의하여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93년과 1995년 두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호분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도굴되었으며 봉토가 깍여 단애면을 이루고 있었다. 복원된 봉분의 전체 길이는 45.3m, 높이 2.8∼6.1m이며, 주호는 너비 14.2m∼5.5m 깊이는 1.5m 내외이다. 봉분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동시에 판축 성토되었으며, 장축 방향은 원부가 동남동에 방부가 서북서에 있다. 널길이 있는 횡혈식(橫穴式) 석실로 원부의 한쪽에 치우쳐 원부와 함께 축조 되었다. 석실의 방향은 널방이 동북동, 널길이 서남서에 있다.석실벽은 할석(割石)을 벽돌처럼 쌓고 판석으로 천장을 덮었으며, 바닥은 큰 할석을 깐 다음 맨 위에 강자갈을 깔고 석관을 설치 하였다. 석실의 크기는 널방 길이4.5m, 너비2.8m, 높이2.7m이며, 널길은 현길이 2.8m, 너비 1.4m, 높이 1.6m 내외이다. 석실 내부는 도굴되었으나 귀고리 1점, 철제 화살촉 1점, 토기편 등 약간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주호에는 적갈색 원통형 토기, 나팔형 토기, 유공광구호(有孔廣口壺) 등의 많은 토기들이 파괴된 채 출토되었다.

경작과 도굴로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원부 정상에는 판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복원된 봉분의 전체 길이 34.5m, 높이1.5m∼3.5m이며, 주호는 너비 4.5m∼8.5m, 깊이 1m 내외이다. 봉분은 몇 개로 나누어 판축하였으며 방부를 원부에 붙여 축조하였다. 장축 방향은 원부가 동쪽에, 방부가 서쪽에 있다. 횡혈식 석실로 원부와 동시에 축조되었다. 장축 방향은 널방이 동남쪽, 널길이 서북쪽에 있다. 석실벽은 할석을 벽돌처럼 쌓았으나 일부 장대석을 사용한 곳도 있다. 바닥은 1겹의 판석을 깔았다. 석실의 크기는 널방 길이 3.8m, 너비 2.4m, 현 높이 1m내외이며 널길은 파괴되어 현 길이 2.5m, 너비1.5m만 남아 있다. 도굴과 봉분의 유실로 인하여 석실에서는 철도자편(鐵刀子片), 토기편, 유리구슬만이 출토되었다. 주호 시설에는 적갈색 원통형토기 등이 파괴된 채 출토되었다.

* 소유자 - 광주광역시청
* 수량 - 2 기
* 시대 - 삼국시대(백제)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로 155 (월계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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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생가

- 홈페이지 : http://culture.gwangsan.go.kr
이 곳은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와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하였으나 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높다란 막돌 기단 위에 세웠다. 왼쪽은 부엌이며, 중앙 2칸은 방인데, 4개로 나누어 열리는 문을 갖고 있다. 나머지 2칸은 2개로 열리는 정자 살문이다. 사랑채도 5칸인데 오른쪽부터 부엌, 방, 마루의 차례로 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행랑채는 4칸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이 집은 용아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용철 선생은 광주 공립 보통학교와 서울의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동경 청산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김영랑과 사귀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외국어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한 후 연희전문학교를 수학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활동에 전념하였다.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등과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문학을 소개하였다.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간하였고,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문단은 프로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김영랑 등과 함께 순수시 운동을 펼쳤다. 정렬적이고 남성적인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선생이 시를 통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곱게 바치려 한 것은 티끌없이 향 맑은 시혼의 순정 세계였다. 그러나 그는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1939년 「박용철 전집」을 간행하였는데, 서두에는 그의 대표작 「떠나가는 배」가 실려 있다. 후에 그의 아름다운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배들이 광주 공원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 (소촌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44-1340
- 주차시설 : 없음
- 이용시간



- 입 장 료 : 없음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무양서원

- 홈페이지 : https://www.gwangsan.go.kr/culture/index.php
무양서원 (武陽書院)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어의(御醫)이면서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을 중심으로 그의 후손 4명(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 문절공 유희춘, 충열공 나덕헌)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최사전은 의술로써 벼슬에 나갔는데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다. 무양서원은 1927년에 탐진 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서 세운 서원이다. 서원의 이름은 광주의 옛 지명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강당인 이택당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다. 합의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동재인 성지재가 있고 왼편에는 서재인 낙호재가 있다. 또한 높은 땅 위에 담장이 있는 무양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사당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원래 서원은 제사 기능과 교육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탐진 최씨 문중에서는 1945년 광산구 쌍암동에 무양중학교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로21번길 26 (월계동)
※ 소개 정보
- 체험안내 : 인문학강좌(숲 생태 문화, 마을가꾸기 등 교육)
\n우리 동네 숲 생태학교(자연물을 이용한 만들기 및 숲속여행)
\n우리마을디자인(마을 디자인 및 마을답사)
\n음악회(우리 동네 음악회)
\n영화 보는 날(춤추는 숲 영화 감상)
\n마을상자 텃밭분양(마을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 15곳과 마을 주민들과 공동 장소에 분양)
\n우리 동네 소풍가는 날(생태공동체 성미산마을과 삼각산 마을 답사)
\n장승세우기(장승전문가와 장승 만들기)
\n소원나무심기(소나무 1구루 키 196cm 심기)
\n나무이름표 붙이기(무양공원일대 나무에 이름표 붙여주기)
\n우리 동네 잔칫날 마을 장승제(글씨를 새겨 장승제 올리기)
- 문의 및 안내
062-521-9923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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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 홈페이지 : "https://www.gwangsan.go.kr/culture/index.php
* 강변과 어우려져 경관을 만드는 곳, 풍영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의 대지 위에 있다. 광주와 광산 일대에 있는 100여 개의 정각 중 대표적인 것이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년) 승문원(承文院) 판교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김언거(金彦据)가 지은 정자이다. 여기서 그는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년 동안을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기대승(奇大升) 등 이름난 문인들과 교우하며 지냈다. 풍영정에 남아 있는 이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은 이때의 흔적이다. 또한, 여기에는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편액(扁額)도 걸려 있는데, 이는 명필 한석봉(韓石奉)이 쓴 것이다.김언거(1503∼1584)의 본관은 광산,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이다.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1525년(중종 20) 사마시(司馬試), 153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옥당(玉堂)에 뽑혀 교리(校理)·응교(應校)·봉사시정(奉史侍正) 등의 내직(內職)을 거쳐 상주(尙州)·연안(延安) 등의 군수를 지냈다. 승문원 판교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 풍영정에 얽힌 전설 *

김언거는 덕망이 높아 낙향을 하자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12채나 되는 정각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풍영정 이외의 11채의 정각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풍영정만 소실을 면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다른 정자들이 다 타버리고 풍영정이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 가운데 앞의 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올랐다. 기이하게 느낀 왜장이 즉시 불을 끄도록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날아들어 다시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현재 정각에 걸린 현판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자와 영정의 글씨체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전설이 생겨난 까닭이 아닌가 여겨진다.

* 소유자 - 광산 김씨 문중
* 규모 - 정면 3 칸, 측면 2 칸, 골기와 팔작지붕
* 시대 - 조선시대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3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호가정

* 설강 유사가 지은 정자, 호가정 *

호가정은 조선 중·명종대의 문신 설강 유사(雪江柳泗)(1502~1571)가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호가정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소강절이 말한 호가지의(浩歌之意)에 담긴 뜻을 취하여 지었다. 이 정자는 1558년(명종 13)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져, 1871년(고종 8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1932년과 1956년 중수하였다.정자는 정·측면이 다같이 3칸인 골기와 팔작지붕의 건물로, 당초에는 중앙에 거실을 두었으나 중수할 때 이를 없애고 전부 우물마루로 고쳤다. 사방좌우 모서리에는 1칸씩의 낮은 난간을 두었다. 사방중앙칸의 가운데는 댓돌을 두어 출입에 편리하도록 하였다.호가정이 위치한 노평산 기슭은 앞에 극락강과 황룡강이 합류하여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호가정 현판을 비롯하여 설강의 호가정기와 노사 기정진의 호가정 중건기, 후손 유보한의 호가정 중수기, 호가정원운, 근차설강정운, 근차판상운등과 오겸, 이안눌, 김성원 등이 누정제영(樓亭題詠)을 새긴 편액이 걸려다.

* 설강 유사에 대하여 *

설강 유서는 중종 23년(15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무장현감, 전라도사, 종성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권신 이량의 모함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당대의 명유인 이황, 이언적, 오겸 등과 교분을 가졌고, 사위로 맞이한 김성원과 후대의 이안눌 등이 그의 시를 즐겨 차운 하였다. 광주 경렬사에 배향되었으며 \'설강유고집\'(雪江遺稿集)과 \'위친필봉제축유서\'(爲親筆奉祭祝遺書)가 전한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연도 : 1990년 11월 15일
시대 : 조선
종류 : 정자
규모 : 정면 3칸, 측면 3칸, 골기와 팔작지붕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곡분토길 195 (본덕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양송천묘역

- 홈페이지 : http://culture.gwangsan.go.kr
\nhttp://www.cha.go.kr
* 정철의 스승, 양송천 묘역 *

송천 양응정의 묘역으로 현재 제주 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묘역에는 1581년(선조 14) 유림들이 세운 묘비와 석물이 있는데 정교하고 고풍이 역연하다. 또 이곳에는 양응정의 아들이며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의 묘와 양응정의 손자인 한림학사(翰林學士) 양만용(梁曼容)의 묘가 있다. 조선 조 명종~선조 때의 문장가이자 문신인 송천 양응정의 선비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묘역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며, 산 아래(동호동 46)에 제각(祭閣)이 있고 묘 앞에 민병승이 찬(撰)한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묘제일은 음력 10월 10일이다.

*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송천 양응정 *

양응정(1519∼1581)은 字(자)가 공변, 호가 송천으로 홍문관 교리인 학포 양팽손의 아들이다.  1540년(중종35) 생원시에 장원하고 1552년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정자에 벼슬길에 나간 뒤 홍문관부수찬, 예문관봉교를 거쳐 수찬(修撰)에 올랐다. 이어 사간원, 사헌부, 공조, 예조, 병조를 두루 거쳤으나 당시부터 싹 트기 시작한 당쟁의 희생이 되어 박산(광산구 박호동)마을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정에서는 송천의 재주와 학문을 아까워하여 다시 불러들여 홍문관수찬, 교리, 응교(應敎)와 예문관봉교와 응교, 세자대강원 보덕(世子待講院 輔德), 사간원 사간을 역임했다. 이어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승정원 좌우승지(左右承旨), 성문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사간원 대사간, 사조참의를 거쳤으나 여러 차례 모함에 걸려 광주 진주 목사직과 경주부윤, 의주목사 등 외직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다.

송천은 제자 정철에게 「나는 글로 헛이름을 얻어 자칫하면 비방거리가 되는데 이것은 유자(儒者)의 수치」라면서 「그대들은 행여 문장가가 되려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또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백광성, 홍연(洪蓮) 등의 제자들에게 「궁리의 뿌리 없이 먼저 문자에 능한 자는 있을 수 없다. 나 역시 늦게나마 그것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글 잘 쓴다고 깊은 사상없이 함부로 붓을 날리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 말로서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훌륭한 가르침이다. 송천은 그 자녀들의 교육도 훌륭하여 「크게는 삼강오상(三綱五常)에서부터 작게는 일사일물(一事一物)까지도 모두 나 자신에게 갖추어진 것으로 수행의 길에는 남녀의 다름이 없다」고 하고 충신, 신독(愼獨), 무자기(無自欺)야말로 학문의 요체이며, 주자의 말대로 「만사불구충효외(萬事不求忠孝外)」라는 말로 자주 깨우쳐 주었다. 이러한 가정교육이 있었기에 훗날 임난때 그 자녀들의 충효열삼강(忠孝烈 三綱)의 본이 세워졌으니 그 자녀들의 애국충절을 위한 고난의 자취는 양씨 삼강문에 정려(旌閭)되어 전해지고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 입 장 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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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정사

- 홈페이지 : 광산구 문화관광 https://www.gwangsan.go.kr/culture/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 용진정사 *
용진정사는 용진산 남쪽의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한말의 도학자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先:1851∼1931)이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용진산에 강당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쓴 곳으로서 한말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원래 용진사가 있던 곳으로 삼봉 정도전, 우암 송시열 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진 뒤 청안이씨들이 그 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석이 정사를 짓는다는 말을 전해듣고 옛 절터의 상대와 중대를 희사함으로써 정사를 지을 수 있었다. 후석이 별세한 뒤 문인들이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湧珍影堂)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있다.

* 일제강점기의 의병, 후석 오준선 *
후석은 본관이 나주이며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다. 이어 18세 때부터 노사 기정진에게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송사 기우만, 식재 기재, 현와 고광선 등과 사귀었고, 전재 임헌회, 입재 송근수 등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의 학문 체계는 경학, 성리학, 예학, 의리론 등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일제는 명사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이라는 금품을 지급하려 하였는데, 이를 거절하자 헌병대로 끌려 가 갖은 협박을 가했으나 끝내 받기를 거절하였다. 이후 1917년 용진산에 들어가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생이 600여명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 하시자 문하생들과 용진정사 앞의 바위에서 통곡하였는데, 그뒤 이 바위를 읍궁암(泣弓岩)이라 불렀고, "원수를 갚기 전에는 상복을 벗을 수 없다."하여 일생동안 백립을 쓰고 지냈다. 명정에 조선유민이라 쓰도록 유언하였다. 1934년에 그의 학문적 체계를 정리한 문집 25권 12책이 간행되었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시대 : 조선
종류 : 가옥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180-48 (왕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광주시 광산구 문화예술과 062-960-8289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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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영당

* 눌재 박상과 사암 박순을 모시는 곳, 송호영당 *

송호영당은 눌재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1728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박상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 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으로 되어있고 주두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 눌재 박상과 사암 박순에 대하여 *

눌재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재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46 (소촌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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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삼강문

- 홈페이지 : https://.gwangsan.go.kr/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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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민공 양산숙 일가를 기리는 정려, 양씨삼강문 *

양씨삼강문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忠愍公) 양산숙(梁山璹) 일가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635년(인조 13)에 건립한 목조로 된 정려이다. 이곳에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두 명씩을 모셨으나, 현재는 나주의 회진 임씨 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의 딸을 임씨 문중에서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의 정려만 모셔져 있다. 충민공 외에 충민공의 형제 양산룡과 양산수, 이들 형제의 어머니 죽산 박씨, 누이인 김광운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 이씨 등이다. 충민공의 아버지는 양응정이며 할아버지는 양팽손이다. 이 곳은 이들이 생전에 살았던 박뫼 마을 앞 산기슭으로 삼강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평범한 건물로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아 외부로부터 차단하였다. 외삼문은 평삼문이며 「梁氏三綱門」이란 현판은 1803년 이헌중이 썼다.

* 충절과 지조의 상징, 양씨 일가에 대하여 *

양산숙은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진을 친 다음 고경명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의주행재소로 가서 선조에게 의병의 활동과 적의 동태를 보고 하였다. 이에 선조는 즉석에서 그를 공조좌랑에 임명하고 교지를 내려 군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듬 해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양산룡도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에 가담하여 진이 강화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 지방에서 재물과 곡식을 모아 만 여명의 군량을 조달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난시키기 위하여 나주 삼향포에서 뱃길로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들이 나타나자 그와 어머니 박씨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바닷물에 몸을 던져 지조와 정조를 지켰다. 정려는 여러차례 정문소초를 올린 끝에 인조 13년 생원 홍탁의 상소로 세워지게 되었다.

* 절부 - 양응정의 처 죽산박씨, 양산구의 처 지산이씨
* 효자 - 양산룡, 양산축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순절
* 충신 - 양산숙은 임진왜란때 진주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투강 순절
* 열녀 - 양응정의 딸 김광운의 처는 정유재란때 삼향포에서 절사
* 소유자 - 제주 양씨 문중
* 규모 - 정면 5칸, 측면 1칸, 맛배지붕
* 시대 - 조선시대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뫼안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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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60-8259
- 주차시설 : 주차 가능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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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동 고인돌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삼거동 고인돌은 평동∼삼도간 도로와 함평∼나산간 도로의 삼각 지점에 위치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이 곳에는 반경 200m 이내의 구릉상에 2개군 49기가 분포되어 있다.고인돌의 형태는 덮개 돌과 덮개 돌을 받치는 굄돌, 무덤방으로 이루어지나 굄돌이 없는 경우도 있다. 굄돌의 유무와 높이에 따라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이 곳 고인돌은 모두 굄돌이 낮거나 없는 남방식이다. 49기 중 굄돌이 없는 고인돌은 20여기이며 10여기는 무덤방이 노출되었다. 덮개돌의 형태는 장방형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원형이나 타원형이다.

가군은 23기로, 군집 형태는 동서 2열이며, 굄돌은 판석형이나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덮개돌은 2기만 100m~130m로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나머지는 얇고 밑부분이 땅에 밀착되어 있다.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동서 방향이 대부분이다. 나군은 26기로 구릉 경사면에 남북 1열로 분포되어 있는데, 북두칠성의 배치와 비슷하다. 크기는 비교적 소형으로, 가군과 비교하여도 작은 편이다. 덮개돌은 땅에 밀착되어 있으며 장축은 모두 군집방향과 같은 남북이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나군 고인돌에서 유래된 것 인듯하다.

삼거동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는 채석장이 없다. 그러므로 이곳의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 쓰인 석재는 외부에서 가져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주변에 최영남이 경작하는 밭에는 유약이 없는 경질의 토기 조각들과 강돌이 흩어져 있다. 이로써 이곳이 선사인들의 취락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연도 : 1990년 11월 15일
시대 : 청동기시대
종류 : 고인돌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삼거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9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상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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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병조형유허비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 취병 조형선생을 기리는 비, 취병조형 유허비 *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碑)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碑)의 지붕과 몸체[碑身]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높이 95cm, 너비 120cm, 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字)로 음각문(陰刻文)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顯宗)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헌(君獻), 호(號)는 충정(忠貞)이며 본관(本貫)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8년) 명경관(明經科)에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재임할 때 허목(許穆)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扶餘)에 귀양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通信上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楊洲)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韓日) 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현재 하남의 안청동에는 풍양 조씨는 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선생의 후손은 없고 경기도에 친, 인척이 있다고 하지만 유허비는 방치되어 왔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地方史 硏究), 금석학(金石學)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소유자 - 국유
* 수량 - 1기
* 시대 - 1873년(조선 고종 10년)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안길 19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상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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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월당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는 곳, 빙월당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였으며,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 마을에 있다. 기대승의 장남 기효증이 1607년(선조 40)에 아버지를 추모하여 지었으며 1938년 기대승의 후손에의해 이전·개축되었다.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 만인 1578년(선조11)에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41년 현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을 보았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빙월설월(氷月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빙월당이 자리 잡은 곳은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마을의 원 종가터인데 높다란 대지 위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매우 풍치가 아름답고 경내도 조용하다.

* 빙월당의 건물 *

빙월당은 후손에 의해 원래의 건물이 이전되거나 개축되었고, 또한 소실된 건물을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후손에 의해 복원된 여러 건물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사당](祠堂) - 정면3칸, 측면2칸반의 팔작집, 정면 반칸은 퇴로 개방되어 있다. 41.98m² (건평 12.7평)

[강당](氷月堂) -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양측 1칸씩은 모두 퇴간(退間)인데 전면과 우측 반칸에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안쪽으로는 후면 반칸을 포함 좌측 2칸에 온돌방을 꾸미고, 우측 3칸에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꾸몄다. 84.29m²(건평 25.5평)

[장판각](藏板閣) - 빙월당 우측에 있는 원래부터 있던 장판각과 좌측에 있는 새로 만든 장판각 2동이 있다. 본래의 것은 정면,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맞배집이며, 새 장판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2동의 건평은 도합 26.44m²(8평)이다. 새 장판각에 고봉집(高峯集), 논사록(論思錄), 왕복서(往復書),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등의 목판(木板) 474매가 보존되어 있다.

[내삼문](內三門) -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솟을삼문. 13.55m²(건평 4.1평)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과 같은 솟을삼문. 12.56m²(건평 3.8평) 원래 월봉서원은 1655(효종6)에 사액(賜額)되었고, 사우(祠宇)와 동제(東齊)- 명성제(明誠齊), 서제(西齊) - 존성제(存省齊), 강당(講堂) - 충신당(忠信堂)이 갖추어졌는데 월봉서원의 액호(額號)는 이산로, 나머지 편액은 송준길이 썼던 것인데, 현판들은 현재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기대승에 대하여 *

기대승(1527~1572)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가로서 자는 명언, 호는 고봉이며, 시호는 문헌이다. 광주 소고룡리 송현동(현 광산구 신룡동)에서 성리학자인 기진의 2남으로 태어났다. 이퇴계와 김하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선학을 놀라게 하는 새 학설을 제시하여 존경을 받았다.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왕복서한을 이퇴계와의 사이에 주고받은 이른바 사칠이기론은 너무도 유명하다. 1549년 사마시을 거쳐 1558년 문과에 급제,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받았고, 종사관(從事官), 집의(執義), 전한(典翰),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역임했다. 1572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병으로 벼슬을 하직하고 귀행중 45세의 나이로 고부에서 별세했다. 종계변중의 진문을 써서 명(明)나라에 보낸 공로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추록되고 덕원군(德原君)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 소유자 - 행주 기씨 문중
* 수량 -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규모 - 사당, 빙월당, 장판각(2동), 내삼문, 외삼문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없음
- 이용시간



- 입 장 료 : 무료
- 화장실 : 없음
- 한국어 안내서비스 : 불가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광주무역회관

1995년 10월에 개관된 것으로 1백 50석 규모로 4개국의 동시통역실 5개와 영상 음향시설을 갖춘 회관이다. 국제회의, 각종 학술제, 세미나 등 주변에 은행들이 들어와 있고 바로 앞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있어 쇼핑하기에 좋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광주공항과 송정리역이 있다. 또한, 20여분 거리에 광주버스터미널이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무진대로 282 (우산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1566-5114
- 주차시설 : 주차 가능(약 275대)
- 이용시간



- 이용가능시설 : 국제회의실, 대회의실, 중회의실, 전시장, 무역클럽, 구내식당, 매점, 예식장

- 화장실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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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각

- 홈페이지 : http://culture.gwang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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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각은 조선인조(仁祖1551∼1627) 때의 문신(文臣)이었던 이신의(李信儀)을 배양하는 곳이다. 이 곳에는 이신의의 유물로 선조왕(宣祖王) 친필병풍(親筆屛風)과 거문고가 보존되어 있다. 병풍은 인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하여 선조왕 친필을 하사(下賜)한 것이며, 거문고는 석탄이 평소 애용하던 거문고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때 왕을 대동하여 강화도로 가던 중 병으로 인천에 체류하다가 수원(水原) 마정리에서 객사(客死)하였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흑석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왕동저수지

- 홈페이지 : https://www.gwangsan.go.kr/culture/index.php
왕동저수지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용진산 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른 아침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장관인 곳이다. 낚시하기 좋은 저수지로 많은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광산구 본량동 주민센터-왕동저수지-원당마을-용진산-사호동 마을까지 10km 구간에 조성된 고향길은 왕동저수지와 옛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산책로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259 (왕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507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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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재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영사재는 대동사와 함께 명곡부락 뒤쪽 산기슭에 있으며 1637년 열사생노당 오효석 (烈士生老堂 吳孝錫)이 건립한 은서강학소(隱棲講學所)이다. 생노당 오효석은 광해군때 본량에서 출생 병자. 정묘양란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효종의 서거로 북벌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진력하다 68세로 별세하였다. 지방에 돌아와서는 청군(靑軍)타도계획을 세우면서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순실과 회동기지한 바도 있으며 제실압구에 세워진 석문에는 숭정일월대명별구(崇禎日月大明別區)라는 외세배제의 강한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건물은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의 평주 고주를 세운 정면 4칸 측면 1칸의 골기와 8작지로 되어 있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중앙에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는 토마루로 되어 있으며 5량집이다. 건물정면에 영사제중수량문(永思齊重修樑文), 대성사예성운(大明祠禮成韻), 차운(次韻)등이 현액되어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길 170-30 (명도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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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제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오남제 건립은 행주기씨 락남선조(落南先祖)인 덕성군 물제(物齊) 기진을 제향하는 제각으로 1560년에 건립했고, 물제 기진은 고봉 기대승의 부친이며 기앙명현기준(己名賢奇遵)의 중형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1칸의 골기와 8작지붕이며 건물내부 우측에 "금송유사 공사원 유사임자" 3월 29일이란 현판내용과 제각정면에 고봉선생과정기훈(高峰先生過廷記訓)이란 제하의 기문이 걸려있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되어 있고, 대문은 소슬대문으로 대문 좌우측에 각 1칸씩 창고로 쓰여지고 있다. 담장은 토담으로 되어 있고, 제각 우측에 행랑채가 있어 관리인이 살고 있으며, 건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건축 과제로서의 가치가 높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용동길 166 (신룡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40-8225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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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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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송정은 광산구 임곡 광산동에 있으며 기효회(奇孝會)의 소건(所建)이다. 정명(亭名)은 지평동에 있는 오인(誤認)의 장수지소(藏修之所)인 칠송정과 동명의 정자이다. 기효회는 호를 함제(涵濟)라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대적하였고 의곡(義穀) 3,000석을 수집하여 義州의 行在所로 수송하는등 큰공을 세웠다. 이로써 군기사검정(軍器寺劍正)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선농인 이곳에 칠송정을 세워 소요하였으나, 亭 자체의 기록은 없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3
※ 소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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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60-8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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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동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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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동에서 낙암산(樂菴山)쪽으로 약300∼400m 떨어진 외딴 민가(民家) 옆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기단부(基壇部)의 중석(中石)과 지대(地臺)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층기단의 면석(面石) 이매(二枚)가 결실된 상태였던 것을 1981년 9월 완전히 해체 복원하였다. 이 때 1층탑신 상면 중앙의 사이공(舍利孔)에서 사각방형(四角方形)의 금동사이함(金銅舍利函)과 사이병(舍利甁), 그리고 몇 조각의 목편(木片) ,죽편(竹片) 등의 사이구(舍利具)가 발견되었다. 사이구(舍利具)는 국립광주박물관(國立光州 博物館)에서 보존(保存)하고 있다.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보면 기단부(基壇部)는 이중기단(二重基團)이며 지대석(地臺石)은 4개의 석재(石材)를 결구(結構)하여 하대석(下臺石)을 겸했고, 4면에 귀기둥(隅柱)과 버팀기둥(탱주撑柱)을 각출(刻出)하여 일면(一面)을 이구(二區)로 구분하였다. 그 위로 하대갑석(下臺甲石)을 얹었는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2매의 판석(板石)으로 짰으며 갑석 윗면은 경미한 경사를 나타내고 1단의 각형괴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면석(面石)의 4면에는 역시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표출되어 있고 한 장으로 된 갑석(甲石)은 아래 쪽에는 부연(副椽), 위 쪽 중앙(中央)에는 1단 괴임을 만들어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각층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塔身)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1층 탑신은 특별한 조식(彫飾)이 없이 4면의 양쪽 모서리에 귀기둥을 나타냈다. 옥개석 상면의 우동(隅棟)은 뚜렷하고 추녀를 내려와서는 완연하게 되바라졌으며 층급받침은 4단이다. 이처럼 1층부터 3층까지 4단이던 층급받침은 4∼5층에서는 더욱 간화되어 3단으로 줄어들었다. 탑신도 2층 탑신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짧아지면서 5층까지 알맞게 체감되어 5층탑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갖추어져 있으나 석질(石質)과 색감(色感)이 달라 후보(後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살펴보면 이중기단(二重基壇)으로 상하층 기단 각면에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있고, 각 옥개석 상면에 탑신을 받는 1단괴임이 있는 등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그 고준(高峻)한 형태와 간화된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고려(高麗)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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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사(광주)

도림사는 1934년 유림들의 발의로 당대의 거유(巨儒) 노사 기정진(盧沙 奇正鎭)을 비롯하여 난와 오계수(難窩 吳繼洙, 후석 오준선(後石 吳駿善)의 학덕과 유풍(遺風)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사우(祠宇)이다. 기정진은 1798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장성에서 기거했고, 8, 9세때 경사(經史)에 뛰어나 순조31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주도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나 평생을 학문과 저술에만 힘쓰다가 1876년 79세로 卒하였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도덕동)
※ 소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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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남제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두남제는 광산동 종산부락에 있으며 행주기씨 문중제실이다. 건물은 화강석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넣고 평주와 고주를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한식기와 8작지붕이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퇴마루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중앙에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천정은 대들보위에 마루대공과 종보를 결구하여 종도리를 걸친 5량집이다. 마루와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창호는 좌우 1칸씩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중앙3칸은 4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띠살창이다. 상인방위에는 빗살창으로된 봉창이 있다. 창호좌우측에는 머름을 장식하였고 좌우측퇴마루는 머름을 대고 1단높인 마루이다. 대문은 맛배지붕의 평3문이며 담장은 토석혼축의 담징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277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225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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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광주공장

- 홈페이지 : www.kumhotire.co.kr
* 승차감과 안전의 비법을 찾아라 *

자동차의 신발이라 하는 타이어, 타이어가 편안해야 주행이 안전하다. 금호타이어는 세계 180여 개국에 수출하는 세계 10대 타이어메이커로 대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다. 광주공장에서는 타이어 역사관과 함께 공장시설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658 (소촌동)
※ 소개 정보
- 수용인원 : 수용인원 20명
- 체험가능 연령 : 대학생 이상 단체
- 체험안내 : 금호타이어 공장 내부 시설 견학(회사 비디오 시청, 타이어 역사관, 내부 시설 견학)
- 문의 및 안내
1588-9582
- 주차시설 : 있음
- 쉬는날 : 주말 및 공휴일 휴무
- 이용시간
평일 09:00 ~ 17:00


- 입 장 료 : 무료
- 내국인 예약안내 : 유선 전화 신청 후, 회사와 협의하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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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 홈페이지 : http://tour.gwangju.go.kr
- 전화번호 : 062-611-3636
월봉서원 (月峯書院)은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대승(奇大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46년(인조 2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654년(효종 5)에 ‘월봉(月峯)’이라고 사액되었다. 1671년에 송시열(宋時烈) 등의 건의로 인근의 덕산사(德山祠)에 모셔져 있던 박상(朴祥)과 박순(朴淳)을 이향(移享)하였으며, 1673년에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그 뒤 전라남도유림에 의하여 1938년 5칸의 빙월당(氷月堂)이 건립되었으며, 1972년에 4칸의 고직사(庫直舍), 1978년에 외삼문(外三門)과 3칸의 장판각(藏板閣), 1980년에 사우(祠宇), 1981년에 내삼문이 건립되었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고대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곳으로 춘∙추향제가 매년 개최된다. 한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손되었다가 1938년 빙월당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사당과 외삼문, 장판각, 내삼문이 건축되었다. 수십년에 걸쳐 하나하나 구축한 점이 특징적이다. 월봉서원에서는 놀이와 예술로 철학을 배우고 조선 선비의 하루를 체험하는 등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 소개 정보
- 체험안내 : * 전통문화체험관광사업
\n- 다시카페(살롱,공방)
\n- 풍류대담팸투어
\n- 꼬마철학자성장학교
\n
\n* 생생문화재활용사업
\n- 가옥이야기 축제(김봉호가옥)
\n- 농가의 사계(김봉호가옥)
\n- 시인의 사계(용아생가)
\n- 야호! 달빛소나타(장덕동근대한옥)
\n
\n* 지역문화유산교육사업
\n- 도란도란 신창동 유뮬과의 대화
\n- 월봉서원 그림자 극장
\n- 풍영정에서 만난 선비
\n- 어등산이 품은 의병 이야기
- 문의 및 안내
062-960-8253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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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애서원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1754년(영조 30)에 이신의(李愼儀)의 학덕(學德)과 충절(忠節)을 추모하기 위하여 호남의 유림(儒林)이 건립(建立)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은 향호유림(鄕濠儒林)의 소굴이며 당쟁(黨爭)의 본거지인 서원이 경제적 폐단까지 겹쳐있어 그 피해가 극심함으로 서원 폐지령(廢止令)을 내려 훼철(毁撤)을 단행하였다. 1901년(고종 38) 서적과 거문고 유품을 임시로 보관하기 위해서 금서재(琴書齋)를 지었다. 서기 1919년 봄 경장각을 짓기 위하여 18년이 된 금서재(琴書齋)를 철거하였다. 서기 1919년(己未) 건립 (建立), 금서재(琴書齋)는 제도가 비천하고 풍우(風雨)와 수화(水火)가 걱정이 되어 철거하고 기미년 봄에 후손들이 의논하여 옛 사우(祠宇)가 있던 자리에 경장각(敬章閣)을 건립(建立)하였다. 서기 2000년 (庚辰) 유애사 사우건립 (遺愛祠 祠宇建立) 사우훼철 (祠宇毁撤) 後 81년 만에 敬章閣 후면에 화려한 단청 사우(祠宇)를 마련 석탄공(石灘公)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으며 2005년 6월 20일 유애서원(遺愛書院)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등록하였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흑석동)
※ 소개 정보
- 체험안내 : 춘향제
\n종원 한마당

- 문의 및 안내
062-960-8252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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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송정동 떡갈비 골목

광주 송정동에는 20여 개의 떡갈비 전문점이 모인 골목이 있다. 송정동 떡갈비 골목의 음식점들은 저마다 고소하고 쫄깃한 떡갈비 맛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찾아들고, 호남 지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들러 가곤 한다. 송정 떡갈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의 떡갈비와 다르다. 보통 떡갈비는 소고기를 이용하지만, 이곳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다. 원래 송정 떡갈비도 소고기를 이용하다가 1990년대 후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료비가 인상되자, 음식 값을 올리지 않기 위해 돼지고기를 섞어 메뉴로 내놓았다고 한다. 육질이 서로 다른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만나 환상의 궁합을 만들어내며 송정 떡갈비가 탄생한 셈이다. 이 외에도 떡갈비에 곁들여지는 뼛국은 송정의 독특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음식이다. 돼지 뼈와 다시마, 무 등을 넣고 오랫동안 끓이는 뼛국은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메뉴다. 떡갈비 한 접시에 뜨끈한 국물 한 그릇 후루룩 마시면 하루 종일 속이 든든하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29번길 (송정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8781
- 주차시설 :
-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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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 국민여가 친환경 오토캠핑장

- 전화번호 : 010 3275 3450
광산구 국민여가 친환경 오토캠핑장은 지산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휴식 공간이다. 오토캠핑장 내부는 4인용(2~4인 가능), 6인용 카라반이 있는 카라반존과 개인용 텐트 사용이 가능한 텐트존으로 구성되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아름다운 환경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가까운 곳에 지산유원지, 어등산 등 관광지가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탑동길 345 (지산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10-3275-3450
- 개장일 : 2021.2,1
- 주차시설 : 카라반 1대 가능
- 이용시간
당일 오후 3시 ~ 익일 오전 11시 (전화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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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열사 생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는 들불야학을 열어 가난한 청년들과 노동자들에게 배움을 나누던 스승이자, 최후까지 도청에 남아 계엄군과 싸우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산화한 광주의 대표적 민주열사다. 생가 내부는 자료전시관으로 사용 중인데, 윤상원 열사뿐 아니라 그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던 박기순 열사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1970년대 후반 들불야학에서 만나 인연을 쌓았던 이들은 민주항쟁과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가족과 친지들이 영혼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이때 5·18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헌정됐다고 한다. 노래뿐 아니라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했던 윤상원 열사의 말은 지금도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인터뷰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천동길 46 (신룡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233-9370
- 주차시설 : 주차가능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상시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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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친수공원

황룡 친수공원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 있다. 광주에서 이름난 유채꽃 명소로, 봄에는 벚꽃의 분홍 물결과 함께 노란 유채꽃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억새를 볼 수 있고, 겨울에는 공원 근처를 흐르는 황룡강에 매년 다양한 오리류가 도래하여 겨울을 나고, 수달, 삵, 큰기러기, 가창오리, 황조롱이, 말똥가리 등과 같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들을 볼 수 있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공원이다. 산책로, 놀이 시설, X-게임장, 체육시설, 유실수원, 생태습지, 주차장,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X-게임장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BMX 등을 즐길 수 있는데, 장비를 대여해 주는 곳은 없으니 직접 가져와야 이용할 수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 241-31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3721
- 주차시설 : 주차가능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상시 개방


- 이용가능시설 : 산책로, 놀이 시설, X-게임장, 체육시설, 유실수원, 생태습지
- 이용가능시설 : 주차장, 화장실
- 화장실 : 가능 (남녀 구분)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경암근린공원

도심 속에서 숲을 접하고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경암근린공원은 광주 광산구 하남동에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운동장과 함께 광장, 어린이 놀이터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잘 정돈된 산책로와 휴게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유아숲체험원이 조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다양한 놀이와 함께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조형물 및 다양한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어 어린이와 함께 나들이하기에 좋다. 그뿐만 아니라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 나눔 길이 설치되어 있어 거동이 불편한 보행 약자들도 쉽고 편하게 숲을 체험하고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다.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대로54번안길 133 (하남동)
※ 소개 정보
- 문의 및 안내
062-960-3721
- 주차시설 : 주차가능
- 쉬는날 : 연중무휴
- 이용시간
상시 개방


- 이용가능시설 : 다목적 운동장, 광장, 어린이 놀이터, 유아숲체험원(모험놀이터, 열매놀이터, 모래샘놀이터, 토굴)
- 이용가능시설 : 산책로, 휴게 시설, 무장애 나눔길
- 화장실 : 가능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1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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