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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행사 정보

[전라남도 나주시] 나주 문화재 야행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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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재 야행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8 나주금성관
- 홈페이지 : najuculturenight.modoo.at
- 전화번호 : 061-334-1551
2023 나주문화재야행은 나주에서 세 번째 개최되는 문화재야행이다.
2023년에는 '가자! 조선의 도시 천년의 시간여행'을 슬로건으로 '달 밝은 밤, 살며시 떠나는 여행'을 선보인다.
2023 나주문화재야행은 8야(夜) 프로그램과 부대행사 및 참여행사로 구성되어 있다.8야(夜)는 각각 야경(夜景)-목사골 달빛 속으로, 야사(夜史)-천년 과거로의 타임슬립, 야설(夜說)-빛소리 따라가는 달빛걸음, 야시(夜市)-싸게 싸게 오랑께, 야로(夜路)-밤 마실 가자, 야화(夜畵)-나주목 달빛 풍경, 야식(夜食)-夜!夜!夜! 나주 야행 식후경, 야숙(夜宿)-오메 자네 왔능가!로 나뉜다.

※ 소개 정보
- 행사 일정 : 2023-06-02 ~ 2023-06-04
- 이용요금 : 무료(일부 유료)
- 행사 장소 : 금성관 일대
- 공연시간 : 18:00~22:00
- 주최자 정보 : 문화재청, 전라남도, 나주시
- 주최자 연락처 : 061-334-1551
- 주관사 정보 : 나주읍성권도시재생주민협의체
- 주관사 연락처 : 061-334-1551


 




행사소개

2023 나주문화재야행은 나주에서 세 번째 개최되는 문화재야행이다.
2023년에는 '가자! 조선의 도시 천년의 시간여행'을 슬로건으로 '달 밝은 밤, 살며시 떠나는 여행'을 선보인다.
2023 나주문화재야행은 8야(夜) 프로그램과 부대행사 및 참여행사로 구성되어 있다.8야(夜)는 각각 야경(夜景)-목사골 달빛 속으로, 야사(夜史)-천년 과거로의 타임슬립, 야설(夜說)-빛소리 따라가는 달빛걸음, 야시(夜市)-싸게 싸게 오랑께, 야로(夜路)-밤 마실 가자, 야화(夜畵)-나주목 달빛 풍경, 야식(夜食)-夜!夜!夜! 나주 야행 식후경, 야숙(夜宿)-오메 자네 왔능가!로 나뉜다.




행사내용

1. 주요프로그램
야경 : 달의 원림 야간관람
야사 : 나주읍성 수문장 교대식, 포도대장과 순라꾼 여행, 조선을 품다(체험 프로그램)
야설 : 夜 한밤 춤꾼 다 나와 '월하무희', 별소리 버스킹, 달소리 버스킹, 월야읍성 공연, 흥 마당극 '남도천지밥'. 나주시립합창단공연, 명창 초청 판소리전
야시 : 별별 청춘마켓, 플리마켓, 조선주막 저잣거리
야로 : 조선 보부상(떡장사, 엿장사, 두부장사), 달빛 아래 다듬이 소리
야화 : 나주목 사진전시, 나주시 유무형 문화재 및 명인전
야식 : 야밤 야식 출출할 '떡', 나주 맛과 멋 '나주 행복한 밥상', 다문화음식관
야숙 : 나주 1박 2일, 도심캠핑, Light Dream in 나주

2. 부대행사 : 단청장 박정자 전통불화전, 인문학 포럼

3. 참여행사 : 이철규 작가 초대전 및 루트머지 고택 음악회, 사랑나눔 음악회, 오지네 축제, 나빌레라 문화배달, 나주향토음식체험


나주 문화재 야행(3)

나주 문화재 야행(2)

나주 문화재 야행(4)

나주 문화재 야행_리플렛2-1

나주 문화재 야행_리플렛2-2

나주 문화재 야행_리플렛1-1

나주 문화재 야행_리플렛1-2





◎ 주위 관광 정보

⊙ 나주 금성관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https://www.naju.go.kr/tour
- 전화번호 :
이 건물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초창은 성종 6~10년(1475~1479)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 나주향교


- 홈페이지 : http://www.naju.go.kr/tour
http://www.cha.go.kr
- 전화번호 :
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 향교에는 1701년(숙종 27)에 창건한 계성사(啓聖祠)가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교궁(校宮)의 배치가 다른 향교와는 크게 다른 특색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교궁의 배치는 대성전이 위에 있고 그 밑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나,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봉안하는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가 바뀐 것이 특색이다. 호남지방의 향교 중 계성사가 있었던 곳으로는 나주향교 이외에 전주향교와 함평향교 등이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신학제 실시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장 전적 145종 195책 중 필사본인 ≪금성연계방안 錦城蓮桂榜案≫·≪유림안 儒林案≫·≪청금안 靑衿案≫·≪통문 通文≫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 홈페이지 : http://www.naju.go.kr/tour
http://www.cha.go.kr
- 전화번호 :
* 나주읍성의 남쪽을 책임지던 곳,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

나주읍성(羅州邑城)의 남문(南門)으로 나주시 남내동에 복원되어 있다. 1920년 경 일제에 의해 약간의 석축만 남고 완전 철거되었다. 이후 1993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으며 그 후 추녀와 천장이 훼손되어 2005년에 보수하였다. 2층으로 된 문루(門樓)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나주읍성에는 동쪽의 동점문, 서쪽 서성문, 남 남고문, 북의 북망문이 있는데 이중 남고문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 조선시대의 평산성, 나주읍성 *

나주읍성은 대부분의 조선시대 읍성과 마찬가지로 평지와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산성으로 배후에는 금성산성을 이루고 있다. 전체 성벽의 크기를 복원해 보면 둘레가 3.679m 면적은 974.390㎡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훼철되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곽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현존하는 유구를 살펴보면, 먼저 서벽(西壁)의 경우는 교동일대에 남아 있는데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중 교동 67번지 부근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돌 크기는 길이 19m, 높이 90~240cm로 성벽의 아랫부분을 1X1m 크기의 자연석을 겉면만 치석하여 ‘잔돌 끼움 방식’방식에 의해 쌓아 올렸다. 서문지에서 북벽까지는 잔존유구가 인되지 않는다. 북벽(北壁)의 잔존유구는 산정동 1-5번지 부근에 길이 15m의 석축열 일단과 성북동 33번지 앞에서 나주 중앙초등학교 뒤편까지 약 50m에 걸쳐 성돌이 흩어져 있다. 동벽은 중앙동 천변(128-12번지) 부근에 석축의 일부가 확인된다. 남벽의 경우 현재로는 남아 있는 유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며 다만 남문지(남외동 2-20번지)는 사적지로 지정되어 남문(南顧門)을 1993년 성벽을 제외하고 복원하였으며, 동점문은 2005년에 복원하였다.

※ 나주읍성 사대문 명칭 - 동)동점문, 서)서성문, 남)남고문, 북)북망문

⊙ 심향사(나주)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린 사찰, 심향사 *

심향사는 전라남도 나주시 대호동 금성산(錦城山)에 있으며, 백양사(白羊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당초의 이름은 미륵원(彌勒院)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현종 2년(1011)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이 이곳 나주로 몽진하였는데 이때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 온다. 고려말에는 공민왕 7년(1358) 중수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고려시대와 관련되고 있는 기록대로 심향사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과 석불이 남아있다.

* 심향사의 문화재 *

전해오는 말로는 옛 나주 군청 내에 있는 북문밖 3층석탑(보물, 원래는 북문밖 탑거리에 있던 것을 1915년 현 위치로 옮김)도 심향사에 있었던 것이라 한다. 이상과 같은 유적 외에도 경내에는 고려시대 3층석탑 외에도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좌상과 극락전 내의 아미타여래좌상(건칠불, 지방유형문화재)등이 있다. 특히 이 종이 불상은 고려 13~14세기경의 아미타여래좌상으로 고려말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내에는 미륵전 앞쪽에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은 원래 북문밖 탑거리에 있던 것을 옛 나주군청으로 옮긴 것을 1977년 12월 25일 심향사로 옮긴 것이다. 이외에도 2개의 탑재가 경내에 있다.

⊙ 나주 목사내아


- 홈페이지 : http://www.naju.go.kr/moksanaea/
- 전화번호 :
나주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사의 관저로서 상류주택의 안채와 같은 평면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는 순조 25년(1825년) 건립된 것으로 건물 구조는 전통 양식인 한옥 ㄷ자형이다. 나주목사내아는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나주는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문화유적 답사지로서 적합하다.

* 규모 - 내아 1동, 행랑채 1동

⊙ 정수루


- 홈페이지 : http://www.naju.go.kr/tour
http://www.cha.go.kr
- 전화번호 :
정수루는 나주에서 편찬된 여러 지지류(地誌類)에 ‘관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정완루는 정수루라고도 부르는 나주의 관아문이다.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1753년 5월 29일~1755년 2월 4일 재임)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수루로 적혀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조나 양식 등으로 보아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로 여겨진다. 이곳을 지나면 나주목 관아인 동헌으로 들어가며 외동헌과 내동헌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는 내동헌인 목사내아만 남아 있다. 정수루 주변으로는 목사를 보좌하던 향리들의 집무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나주목의 궁실인 나주객사 금성관과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 등의 건물이 있었다. 최근까지 정수루 아래로 사람과 차량이 왕래하였으나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지금은 우회시키고 있다.

* 정수루의 건물 구조 *

정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낮은 원형 주춧돌(전면열에는 장초석을 놓음)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2층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2층 기둥 위로는 주두를 놓고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기둥 사이마다 1구씩의 꽃받침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 한 2익공식으로 쇠서에는 연꽃봉우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는 대량을 걸고 그 위로 종량을 얹힌 5량 구조이며, 천장은 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설치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측면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 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용머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왼쪽용은 여의주가 없고 오른쪽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 규모 - 정면3칸, 측면2칸, 중층누각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지정현황 : 전남문화재자료
지정연도 : 1984년 2월 29일
시대 : 조선
종류 : 누각

⊙ 예향한정식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061-333-1009
나주천 옆에 있는 건물이 150년 된 기생집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전통 한옥으로 꾸며진 한정식 전문식당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과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식당 내부와 정원 등 외국인에게 홍보하기에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홍어, 돼지고기, 묵잡채와 토하젓 등 나주 특유의 전통 음식으로 꾸며진 50여 가지의 반찬과 요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특히 직접 담근 3년 된 묵은 김치의 맛이 일품이다. 주말에는 예약이 꼭 필요하며 식사 후에는 우리 전통차를 즐길 수 있다.

⊙ 고려와 조선을 잇는 나주 역사 기행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견훤은 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고, 고려 태조 왕건은 나주 완사천에서 훗날의 장화왕후와 연을 맺었다. 나주는 고려 성종 때 나주목이 된 이래 천년 목사 고을로 불리는 고장이다. 전주와 나주의 지명을 한 자씩 따서 ‘전라도’라 이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나주는 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 나주 순교성지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 순교성지는 기해박해(1839) 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1807~1839베드로)와 병인박해(1866~1871)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바오로,1822~1872),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문보(바오로, 1822~1871)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교자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경당 입구에는 60톤의 거석과 관 모양의 제대가 있고 경당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위쪽만 뚫려 있다.성당 내에는 초대 나주 본당 신부인 하롤드(헨리, 1909~1976) 대주교가 초대 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되어 당시 수녀들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인근에 그들이 순교한 장소인 무학당 순교터(현 나주초등학교 정원 내)가 있고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여 개의 돌이 130여 년 동안 현장에 보전되어 오다가 2001년 나주 성당으로 옮겨 그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건립되었다.

⊙ 나주목사고을시장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najumarket

- 전화번호 : 061-334-8249
나주목사고을시장은 과거 호남의 도읍지가 있던 나주에 개설되어 있는 전통시장이다. 상설시장인금계매일과 정기시장인 성북시장을 통합해 2012년에 개설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주의 특산물과 농산물, 생활필수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 나빌레라 문화센터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를 위한 문화 휴식 공간

일제 폐산업시설이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로 재탄생했다. 나빌레라 문화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폐 산업시설 문화재생 공모사업어 선정되어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2017년도 10월에 개관했다. 기존 건물 6동에 전시실 및 소극장 등 문화예술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조성했다. 또한, 목수김씨전, 대한민국 천연염색문화상품대전 수상작 전시 등 다양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나주 구도심과 혁신도시를 이어 스마트 생태도시를 구현해줄 나빌레라 문화센터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 라떼르


- 홈페이지 : njlaterre.modoo.at
- 전화번호 : 010-2682-0916
#본 업소는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하며 내국인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나주읍성안 나주곰탕인근에 위치한 라떼르는 나주터미널에서 도보로 십분거리, 나주역에서 택시 기본 요금이 나올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다.

⊙ 3917마중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3917majung
- 전화번호 : 061-331-3917
‘3917 마중’은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근대 한옥으로, 근대 문화유산의 원형을 보존한 의미있는 공간이다. 총 4,000평의 대지에 한옥 4채와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 독채로 운영하고 있어 프라이빗한 고택 체험이 가능하다.

⊙ 서성문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읍성의 서쪽에 위치한 서성문은 나주읍성 수성군과 동학군의 전투, 즉 우리 민족끼리의 전투 역사를 가진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성문이다.
1894년 7월 1일 나주를 점령하기 위해 동학군이 서성문으로 내달렸으나 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당시 나주목사 민종렬과 협의를 위해 나주읍성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그 문이 서성문이다.
1815년에 발간된 '나주목여지승람' 서문에 ""영금운으로 기록된 편액이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 '영금문' 현판을 제작하여 걸었다. 영금문은 '두루 나주를 비춘다' 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예상된다.

⊙ 나주글램핑어스


- 홈페이지 : https://www.instagram.com/glampingus_cafeglam/
- 전화번호 :
나주 글램핑 어스는 나주의 핫플레이스로 이름난 한수제와 마주하고 있는 캠핑장이다. 금성산 산자락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이곳은 호숫가의 아늑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즈넉하고 나무가 많아 그늘지고 운치가 있다. 캠핑장에선 금성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일년 내내 볼 수 있는데, 매년 4월 초에 한수제 벚꽃축제를 진행하고 있어 봄날의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빠지게 된다. 특히 저수지 쪽은 벚꽃 명소다. 총면적은 2,016㎡이며 글램핑 7동이 마련되어 있다. 바비큐 등 개별 취사가 가능해 편하고 자유롭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내외부 시설 모두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또한 캠핑장 바로 옆에 창 넓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간단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오후 9시 이후 예약문의는 문자(예약날짜와예약인원)을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나주곰탕 하얀집


- 홈페이지 : http://hayanjib.com/
- 전화번호 :
나주곰탕 하얀집은 전통의 맛을 계승하여 정직한 식자재를 사용하는 정성 들인 곰탕을 대접한다. 1910년 나주 목사 내아 장터 '류문식당' 창업을 시작으로 11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맛으로 현재는 4대 길형선 명인이 가업을 계승하여 운영하고 있다. 새벽 2시부터 3시간 동안 끓이고, 3시간 동안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한 육수에 신선하고 품질 좋은 한우로 정성을 들인 곰탕, 쫄깃하고 부드러운 한우의 식감이 살아있는 수육 곰탕, 질김 없이 담백한 수육까지 오롯이 내가 먹는 음식처럼 정성을 들인 나주곰탕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맛이다.

⊙ 한수제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에서 4월이면 유명해지는 곳이 있다. 나주시의 주산인 금성산 자락에 안긴 형상을 한 한수제라는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둘레로 제법 큰 벚나무가 심겨 있어서 해마다 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비록 봄이 아니더라도 한수제는 저수지를 둘러싼 녹음이 가득한 장소로, 전원적인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나주읍성에서 도보 15분 정도 이동하면 한수제 입구가 나오는데 입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잘 정돈된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한수제 길을 따라서 금성산 맨발길이 조성되어 있어 맨발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한수제 경현길 포토존도 마련이 되어있어 한수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곳곳에 쉼터가 있어 나주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 해밀보리밥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친절한 서비스와 푸짐한 한상을 제공하는 건강한 보리밥 맛집이다. 입식테이블과 좌식테이블이 나눠져 있으며, 가게 내부가 넓어 단체 방문도 가능하다.
보리밥을 주문하면 여러가지 나물과 함께 수육, 생선구이, 계란찜 등의 푸짐한 반찬이 나오며 후식으로 수정과도 준비되어 있어 셀프로 즐길 수 있다.

⊙ 윤뜰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역 근처 브런치와 디저트 전문점으로 1, 2층과 루프탑까지 3개 층을 이용할 수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샹들리에까지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각종 음료와 쿠키, 그리고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윤뜰 토스트까지,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어 브런치 고객들이 즐겨 찾는다. SNS 맛집 감성의 카페로 사진을 찍는 손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완사천, 나주최석기가옥 등의 문화재와 나주 역전근린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이 수월하다.

⊙ 행운분식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주로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사라다빵으로 유명한 분식점이다. 외관은 작고 허름해 보이지만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동네 명물이다. 아메리카노, 꽈배기, 야채 고로케, 소시지 빵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떡볶이, 순대 등 일반 분식집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없다. 나주 동점문, 곰탕 골목 등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을 즐기기에도 수월하다.

⊙ 하이마트 나주점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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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주애꽃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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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구도심에 위치한 두부요리집이다. 국산콩으로 직접 만드는 수제두부 전문점이다. 메뉴는 두부전골, 두부보쌈정식, 순두부, 청국장 등이 있다. 특이하게 색동두부로 맛볼 수 있다. 두부도 따로 구매가 가능하다. 주차장은 따로 없어 공영주차장이나 길가에 차를 대야 한다. 입구를 들어서면 복도를 따라 쭉 걸어나가 안쪽에 집 한채가 나오는데 이곳이 식당이다. 내부는 넓고 좌석이 많으며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점심특선은 알찬 구성에 저렴한 가격이다. 같이 나오는 보쌈과 돌솥밥의 색깔도 특이하게 노랑색이다. 두부는 직접 만든 만큼 부드럽고 맛있다. 식사를 마친 후 정원도 있고 앉을 자리가 있어 간단한 티 타임을 즐길 수도 있다.

⊙ 돌박사 나주점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나주에서 황태설렁탕이 맛있는 맛집이다. 간판문구에 쓰여 있듯 사골 육수처럼 진하게 우려내어 담백하고 시원한 황태국물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대표 메뉴는 황태설렁탕과 황태떡국이다. 밑반찬은 무말랭이, 고사리, 김치, 깍두기, 콩나물 등이 나온다. 기호에 맞게 곁들일 수 있도록 청량고추, 새우젓이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국물은 일반 설렁탕이나 곰탕과 다르게 기름기 없이 굉장히 담백하다. 묵직하게 진하며, 간이 별도로 되어 있지 않다. 황태설렁탕안에는 황태, 파, 두부가 들어있다.

⊙ 남평할매집


- 홈페이지 : http://www.남평할매집.kr
- 전화번호 : 061-334-4682
나주시 매일시장에 자리 잡은 남평식당은 기름기 없는 맑은 국물의 나주곰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푸짐한 건더기와 개운한 국물로 오랜기간 사랑받아온 이곳은 남도음식 별미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달짝하고 시원한 깍두기는 담백한 곰탕의 국물과 잘 어울린다.

⊙ 나주장(성북장) (4, 9일)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061-330-8465
광주에서 시외버스로 나주공용터미널에 내리면 바로 도로변에서부터 5일 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바로 앞에는 원예협동조합 공판장이 있어 과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월 4, 9, 14, 19, 24, 29일이면 5일 시장이 형성되어 장옥은 41동 261간의 점
포가 있으며 점포사용인원은 112명 정도이며 주로 어물, 식료품, 잡화, 채소,의
류가 소매되고 있으며 개설일자는 1966년도에 5일시장이 개장되었다.

⊙ 탯자리나주곰탕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061-332-3377
50여 년 전 나주 곰탕이 처음 탄생된 곳이며 하루 종일 고아서 뿌옇게 우려낸 사골 곰국에 수십 근의 고기를 삶아내면 맑은 장국처럼 보이나 맛은 시원하며 담백하다. 곰탕이 태어난 자리라는 의미의 탯자리나주곰탕은 각종 방송국에 수차례 소개되었으며, 나주배 김치와 공동으로 현재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완료된 상태이다. 고유한 전통의 숨결은 주인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고, 해마다 남도 멸치 젓갈로 2만 포기의 김장을 하여 일 년 내내 묵은지가 별미로 나온다.

⊙ 나주곰탕노안집


- 홈페이지 :
- 전화번호 : 061-333-2053
1963년부터 매일 지상 입구에서 장터 국밥집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나주의 대표적인 맛집이다. 곰탕에 들어가는 고기를 국물에서 바로 건져서 썰어내기 때문에 고기 맛이 살아있고, 고기와 국물의 온도차가 나지 않아 국물 맛이 좋다. 미리 고기를 썰어 준비해 두는 것이 아닌 만큼 손은 한 번 더 가지만 그만큼 정성이 더해진다는 주인의 설명이다.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홈페이지 : http://www.najusim.or.kr
- 전화번호 :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산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나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나주-광주 간 기차를 이용해 통학하던 한, 일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흔히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 개관하였다. 더불어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나주역사도 함께 볼 수 있다.

*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나주역사 *

1913년 7월 1일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된 건물로,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과 조선인 남학생의 편싸움을 발단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신축 당시의 설계 등의 기록이 없어서 원래의 규모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1923년 북쪽 벽에 이어 화물창고를 증축하였고, 1970년 본건물의 지붕을 이은 일본 기와를 슬레이트로 바꾸었으며, 개찰구 위치를 변경하였을 뿐 기본 구조나 기둥 등 목재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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